차박지로 서귀포 법환동 돔베낭골과 예래동 논짓물 두 군데를 생각했다.
제주시와 멀기는 했지만 제주도 비경은 제주시보다는 서귀포시가 더 많다.
마눌님과 돔베낭골과 속골, 법환포구를 거쳐 논짓물로 갔다.
여러 군데 돌아다니다 보니 차박지 도착이 너무 늦어 첫날을 너무 허겁지겁 보냈다.
힐링하러 가는 차박인데 오히려 일이 되고 쫓기는 느낌이다.
오랫동안 하려면 재미는 없더라도 단순해야한다.

집에서 기본적인 먹거리를 준비하고 서귀포로 출발했다.
1131번 지방도(5.16 도로, 제1횡단도로, 11번 국도)를 타고 갔다. 제주에 살면서 도로 명칭에 깊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길을 찾기 위한 도로가 아니라 생활을 위한 도로고 그냥 불리는 대로 부르면 됐다.
타지에서 오신 분이 가끔 0000번 도로 타고 왔다고 하면 나는 다시 물어보곤 했다.
5.16 도로는 박정희정부시절 건설되었기에 그 상징으로 명명되어졌고 지금도 도민들에게 통용되고 있다.
물론 군사정변이라는 의미를 놓고 보면 그리 좋은 명칭은 아니지만 도민들 입에 붙여진 도로명칭을 바꾸기에는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정식 도로명칭을 바꾸려면 도민 50%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는데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되면서 도로의 격이 하락했다. 국도 11번에서 지방도 1131번으로.
하지만 도로가 주는 시원함과 적당한 굴곡, 그리고 맑은 하늘과 어우러지는 도로의 원근감은 조선 최고다.

50분 정도를 달려 서귀포시 법환동 <돔베낭골>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은 상단과 하단 두 군데 있었다.
바다뷰를 위해서는 상단주차장으로 가야 한다. 이미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주차면이 그리 많지 않은 작은 주차장이다.
정자옆이 비어있어 "오 땡큐~~"를 연발하며 자리 잡아보니 "이런 이런" 나무에 가려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미 터 잡고 있던 성명불상의 50대 남자가 반바지만 입고 상의를 탈의한 채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거기서 들려오는 음악소리도 크다.
이렇게 작은 주차장에서 이웃을 잘못 만나면 밤새 고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돔베낭골 구경도 못한 채 차를 돌렸다. '또 다른 선택지를 향해~~'

돔베낭골 바로 옆 <속골>로 향했다. 의외로 주차장에 차가 없다. 돔베낭골과 마찬가지로 주차장은 두 군데다. 이번은 좌측과 우측이다.
좌측은 바다뷰가 전혀 나오지 않아 장박 위한 캠핑카 1대 외에는 차가 업었고 우측에만 2대 있었다.
이 정도면 괜찮다 싶어 차를 세우고 속골 경치를 보려고 바다로 내려가보니 역시나 이미 여러 선배님들이 공간 하나 없이 잘 활용하고 계셨다.
잠시 속골을 둘러보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철수다. 주차장에서 잘 수도 있었지만 차박에서 버릴 수 없는 것이 경치구경이다. 마눌님도 한마디 한다. "아무 데서나 자는 건 노숙, 뷰가 있으면 차박"

<법환포구>로 향했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인근에 있어 가보기로 했다.
포구에 들어서니 엄청난 차량과 인파가 몰려있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너무 많다'
범섬이 바로 앞에 있어서 경치도 좋다. '나타났다 홍반장'의 촬영지 이기도 해 법환포구는 인지도 있는 관광지다.
물론 차박지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냥 경치만 구경하고 빠져나왔다.
이제 남은 차박지는 '논짓물' 뿐이다. 노숙과 차박이 결정되어야 하는 마지막 희망지다.

다시 30분을 달려 중문을 지나 예래동 <논짓물>로 향했다.
예례동이 맞을까? 예래동이 맞을까?
다 같이 쓰이는 듯하다. 한자로는 예래동(猊來洞)이다.
서귀포시 예래동은 행정동이다. 법정동으로 색달동과 상예·하예동을 관할하고 있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 간판에 색달이란 말과 상예, 하예 명칭이 들어가 있다.
마을 분위기는 조용했다. 관광객들도 많지 않았다.
많고 적음이 주관적이긴 하지만 법환포구를 들린 후 논짓물을 간 거 기에 관광객이 거의 없을 정도로 느껴졌다.
논짓물은 한라산에서 흐르는 물이다. 용천수다. 한라산 물이 바다로 빠져나가고 있다.
제주도 해안을 돌다 보면 용천수 솟는 곳이 꽤 있다. 논짓물 같이 많이 솟는 곳은 담수풀장으로 개장하기도 한다.
용천수는 식수나 농업용수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곳 논짓물은 바다와 접해있기에 농업용수로도 사용이 불가하단다.
그래서 '놓는 물, 놓아버리는 물, 논다'라는 말로 전해지면서 '논짓물'이 되었다고 한다.

논짓물 바로 앞 주차장이나 도로는 사람이 많이 다니고 같이 묻어갈 캠퍼들도 없어서 만약 차박세팅이 이루어지면 통행객들의 눈길을 끌기에 딱이다. 차박장소로는 적당치 않았다.
그래서 약간 떨어진 곳을 택했다. 올레코스이기는 하지만 중간에 큰 돌덩이가 있어 올레꾼들에게 피해는 주지 않겠다 싶어 차를 밀어 넣었다. 나름 괜찮다. 하지만 화장실까지는 5분여를 걸어가야 한다. 그래도 가까이 화장실이 있어 괜찮았다.

차박지 위쪽에는 수년째 공사를 하다 만 건물이 흉물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말레이시아 기업인 버자야 그룹이 총 사업비 2조 5144억 원의 예래휴양형 주거단지를 조성하려 했지만 2015년 대법원이 "유원지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토지수용 무효 판결을 내렸다. 그 후 버자야 그룹과 제주도(JDC)와 소송, 토지 강제수용에 따른 일부주민의 소송을 거치며 현재 시설과 사업권이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로 넘겨져 있다.
향후 어떤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될지 모르지만 하루빨리 지역주민과 기업이 윈윈 하는 전략으로 개발되었으면 한다.

논짓물의 야간 또한 낮 동안만큼 조용하고 한적하다.
21시가 넘었지만 손님 한 두 테이블의 계절음식점 영업도 하고 있었다.
화장실도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주차장 앞에는 편의점이 불을 밝히고 있어 필요물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편의점 하면 맥주밖에 생각나지 않아서~)

22시쯤 취침모드로 들어갔다.
차박지에서의 시끄러운 소리는 없었다.
다만 차박지 지면이 약간 비스듬하게 기울어서 차가 전체적으로 기울었다.
잠자리에 불편을 줄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더 평탄한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침에 일어나 생태공원(대왕수천길)을 걸었다. 싱그런 공기가 몸속에 들어간다는 느낌. 자연의 소리를 대표하는 이름 모를 새소리. 새소리에 맞춰 들리는 개울물 흐르는 소리까지. 바닷가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혼자 걸어도 좋고 가족들과 같이여도 좋겠다.

차박지에서 해안도로 올레길을 따라 동쪽으로 300미터쯤 가면 넓은 주차장이 나온다.
예래천이 흘러 바다와 만나는 곳이다.
우리는 그곳에 차를 세워 놓고 예래천 하구에서 해루질을 했다.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물수제비를 뜨고 바닷가 웅덩이에 있는 고동과 작은 고기들을 구경했다.
소박한 즐거움을 주는 또 하나의 체험을 했다.

뜻밖에 수확이다. 커다란 군소 한 마리를 발견했다.
액션캠(방수가능)을 꺼내 수중촬영을 했다. 조그만 호에 이렇게 큰 군소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마 밀물 때 들어왔다가 빠져나가지 못한 듯싶다.

다음 차박 올 때 바다에 온다면 조그만 낚싯대를 가져와야 할 듯싶다. 구멍낚시를 하고 싶어졌다. 돌우럭도 좋고 배도라치라도 괜찮다. 어릴 적 낚시했던 감성을 느끼고 싶다. 마눌님과 함께 낚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이벤트인 것 같아 제안을 해봐야겠다.(마눌님이 허락해 주면 적극지원해 주겠다는 뜻이어서 정말 편할수 있음)

잠자기 위한 차박이 아닌 즐기는 차박을 하려면 논짓물이다.
올레 8코스가 이어지고 있어 올레길을 다녀오는 것도 좋고 예래생태공원만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이후 시원하게 논짓물 담수욕으로 마무리하면 완벽한 힐링이다.(아! 시원한 맥주 한 두 캔은 필수)

넓은 주차장에 우리 밖에 없었다. 관광객이랑 현지 주민으로 보이는 차들이 들락날락 하긴 했지만 조용하게 있기는 안성맞춤이었다. 처음부터 차박지를 여기로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역시 화장실 문제가 걸림돌이었기에 여기서는 해루질과 바다뷰 정도로 만족이다.

아래 지도에서 대왕수천과 만나는 해안도로 지점이 차박지이고 예래천과 만나는 해안이 위에 보이는 사진의 주차장이다.
차박지로의 정답은 없다. 뷰가 없다고 노숙이라고 하는 것은 억지다.
어떤 목적이냐에 따라 노숙이 될 수도 차박이 될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다면 그 장소가 어디라도 '차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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