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삼천포 여객선 여행기 / 이코노미 객실과 프렌즈룸 이용 / 차량 선적 / 아날로그 여행

정신적자유

제주 삼천포 여객선 여행기 / 이코노미 객실과 프렌즈룸 이용 / 차량 선적 / 아날로그 여행

먹돌세상 2024. 4. 23.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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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삼천포로 간다. 4박 5일간 일정이라 차를 갖고 가기에 차박장소도 물색하면서 이것저것 알아보느라 혼란스러웠지만 마눌님은 물론 나 역시 기대감이 더 컸다.

우리가 타고 갈 배는 2만 톤급으로 900여 명을 태울 수 있는 거대한 여객선이다. 이름도 예쁘다. '오션비스타 2'

제주항 차량 선적 들어가는 중(이여객선 아님)

제주항에서 출발하는 시간은 15시다.
차량선적은 13시 30분까지 해달라는 문자가 와있어 우리는 최대한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이미 차량들은 선적 중이었는데 내 생각엔 출발직전까지 차량을 선적해야 할 정도로 많았다.
의외로 많은 화물차들이 제주와 삼천포 간 물량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차량 선내 진입후 이동 중

차량은 6 부두에 선적해야 해서 일단 마눌님과 함께 6 부두에 진입하려니 출입문에서부터 검문 시작. 두 사람의 신분증을 제시한 후에 들어갈 수 있었고 선적장소에 회사 관계자가 차량번호로 예약여부 확인했다.
마눌님은 하차한 후 그 장소에 대기했고 나는 여객선 내부로 들어가 차량을 주차하고 나와 셔틀버스를 타고 7 부두 승선장소로 향했다.
(차량 선적은 6 부두, 승객들은 7 부두 대합실에서 승선)

차량 선적 마치고 7부두로 이동하여 티켓팅 중

우리는 온라인티켓을 받지 못해 매표소에서 신분증 제시와 함께 종이티켓을 수령하고 14시 30분쯤 승선을 시작했다.
(매표소에서 신분증 제시, 승선장 들어가면서 신분증 제시, 선박에 들어가서도 신분증 제시)

브릿지를 통해 승선

여행객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적지도 않은 터라 적당한 느낌이었다. 오히려 적당한 수준이기에 편안한 여행의 느낌과 심심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제일 저렴한 이코노미 객실

우리가 배정받은 객실은 5007호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과 삼천포가 고향인 노부부, 사진촬영 거치대를 들고 탄 중년의 아저씨. 그리고 젊은 낚시객 2명이 함께 했다.

준비된 이불과 베게를 가져다 자리를 잡으면 된다.

우리가 처음 객실로 들어가게 되었고 이곳저곳 살피다가 제일 구석자리에다가 충전기 꽂을 수 있는 자리에 이불을 폈다.(이불은 2장, 베개는 1개 제공)

배 위에서 한 컷

출발 직전에 밖으로 나가서 한 컷!
앞에 높이 솟은 탑은 제주 VTS(해상관제센터) 건물이다.
여객선은 물론 어선들의 항로까지 관리하는 공항의 관제탑이라고 한다.

또다른 여객선이 들어오는데 어디서 오는지 모름

우리가 출발준비 중인데 여객선이 제주항으로 입항하고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여행을 즐기러 오는 관광객과 볼 일 보고 제주로 귀향하는 도민들이 타고 있겠지요!

나는 여객선을 많이 타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났던 일들 중 기억에서 잊히지 않고 배를 탈 때마다 리마인드 되는 사건이 몇 개 있다.

생애 처음 여객선을 탔던 때는 초등학교 4학년 때다.
부산에서 제주로 전학을 올 당시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준 봉투(나의 생활기록부 등 전학서류) 하나를 들고 어머니와 제주를 향하는 '아리랑호'를 탔었다.
당시 비행기 여행이 일반적이지 않을 때라 그런지 배안은 엄청 붐볐던 걸로 기억한다.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도 나는 봉투를 잃어버리면 학교에 다닐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졸면서도 봉투를 지켰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중요한 봉투라고 할 거 까지야 없지만 어린 나이에 참 순수했던 것 같다. 부산에서 제주까지 12~13시간 소요되기에 멀미를 했을 법도 한데 그까지는 기억이 없다. 한라산에 눈이 띄엄띄엄 보였던 것까지만 기억난다.

두 번째 기억은
대학졸업여행으로 홍도를 다녀왔을 때였다. 목포항에서 출발해 홍도로 들어가 1박 하고 다시 목포로 나오는 일정이었는데 들어갈 때는 파도도 없고 날씨가 너무 좋았다.
우리를 태운 쾌속선은 그야말로 바다 위를 질주했다.
당시 쾌속선은 바닥 가운데가 뚫려 있어 흡사 레저보트 같았다.
태어나서 그렇게 빠른 배는 처음 타봤다.

문제는 다음날부터 날씨가 나빠져 풍랑주의보가 내려졌는데도 불구하고 홍도유람선은 예정대로 강행했다. 그렇게 심한 배 흔들림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탑승객들은 여기저기 멀미의 흔적을 남기느라 바빴다. 나 역시 얼굴의 구멍구멍 모두에서 물이 흘렀다.
이 배는 더 이상 유람선이 아니었다.

홍도에서 나오는 날, 입도할 때의 배를 타게 되었는데 그때는 그렇게 재미있던 배였는데 지금은 풍랑을 견뎌야 하는 나약한 배였다. 배는 몹시 흔들렸고 선내에서는 비명소리로 가득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우리 같은 젊은 친구들은 객실 내에서 기둥을 붙잡고 앉아 있을 수 있었지만 어르신들은 의자 사이의 통로에서 앞 구르기를 할 정도였다. 어떻게 도와드릴 방법이 없었다.
두어 시간을 달려 목포에 도착하니 승객 모두 초주검상태였다.

그렇게 홍도여행은 마무리되었지만 내 생애 처음 배 멀미를 알고 무서움을 느꼈다. 아직도 배멀미는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마지막은 아직도 지인들에게 말할 정도로 생생한 기억이다.
목포에서 출항해 추자를 경유해서 제주로 향하는 여객선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당시 추자에서 승선을 했고 이후 마루형 객실로 이동해 자리를 잡았다.
같은 객실 선반 위에는 라면박스 하나가 얹어져 있었다. 그 밑에 박스 주인으로 보이는 60대 남자(당시)가 앉아 있었고 나는 그 반대편이었다.

배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 박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그냥 토끼 정도의 가축이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박스는 조금씩 더 흔들리더니 어느 순간 종이 찢기는 소리와 함께 박스가 떨어졌다.
승객들이 놀래며 웅성거렸다.

크기는 어른의 허벅지만 했고 피부색은 갈색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가 그려져 있었고 긴 형태의 생김새는 주위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또한 커서 그 무게를 짐작케 했다.
그것은 가물치였다. 가물치의 실물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출처 : 전복마을 쇼핑몰 사진 캡쳐

주인은 가물치를 잡기 위해 애썼지만 쉽게 잡히지 않았다. 마루를 휘저으며 다녔다.
끝내 제압되며 다시 박스 안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지만 배가 도착할 때까지 계속 가물치 쪽으로 시선이 향했고 내내 가물치 생각뿐이었다. 지금도 생생하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지금은 제주를 출발하고 시점이다. 설렘이 앞서는 시간이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도 함께 리마인드 되고 있다.

5006호실 전체가 프렌즈 룸

3박을 마치고 삼천포에서 돌아오는 배편을 다시 예약했다.
제주를 출발할 때는 이코노미로 예약했지만 돌아올 때는 프렌즈 룸으로 예약했다.
출발이 23시 50분이고 3박의 여행으로 마눌님이나 나나 너무 피곤한 상태라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려고 예약을 했는데 참으로 독특하게 생긴 구조라 당황스러웠다.

흡사 난민촌 같은 형태로 구역을 나눠 놨는데 딱 2명이 들어가면 알맞은 구조로 만들어 놨다.
들어가기 전 까지는 별로였는데 자리 잡고 누워보니 완전 딱이다. 괜찮다.

객실은 칸막이로 나눠져 있음

다른 사람의 시선이 없어서 그런지 마눌님과 나는 배 출발과 동시에 깊은 수면에 들어가서 제주에 도착할 때까지 잤다. 가성비 최고다. 앞으로 삼천포 여행의 기회가 있으면 이용하고 싶다.

다른 지역을 운항하는 배편에도 이러한 객실이 있는지 궁금하다.

배가 일으키는 포말 촬영

제주로 돌아올 때는 배의 롤링이 조금은 있었다. 파도가 좀 있었다.
하지만 배가 워낙 커서 이 정도쯤은 괜찮은 듯했다.

오션비스타2의 후미

배의 후미는 열심히 스크루가 돌아가서 그런지 많은 물보라를 일으켰다. 제법 빠른 속력으로 나가고 있는 듯했다.

여명상태의 제주모습

멀리 제주도가 보인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밤에 편히 잔 터라 컨디션이 괜찮다.
조금 있으면 안내방송이 나올 것이다. "차량가지신 고객님께서는 동승자와 함께 5층 로비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드디어 제주항으로~~

이제 제주항 도착직전이다. 제주와 삼천포를 잇는 배편 '오션비스타 2'
결론은 괜찮다.
직원들도 친절하고 시스템도 체계적이다. 무엇보다 밤새 달려 아침에 제주에 도착하는 시간대로 관광객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을 것 같다.

배의 출항과 입항을 알리는 뱃고동은 배의 덩치만큼이니 커다란 소리를 낸다.
뱃고동소리는 듣는 이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 해석된다.

여행자들에게는 여행 시작의 소리로
순수한 꿈을 가지고 어린이들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알리는 소리로
연인들에게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는 소리로
그리고 나에게는 디지털시간을 떠나 아날로그 시간으로 떠나는 시간의 소리로 들린다.

과거의 리마인드 시간으로 들어가 당시에 나와 같은 배를 탔던 승객들의 느낌을 최대한 느끼고 싶다. 당시의 상황을 자꾸 생각하려고 하는 것이 과거의 나의 모습을 자꾸 보고 싶어 하는 솔직한 내 마음이지 않을까?

아날로그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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