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완벽의 추구(탈벤 샤하르), 행복한 최적주의자가라면 삶이 행복해질 수도 있겠다.

정신적자유

<북리뷰> 완벽의 추구(탈벤 샤하르), 행복한 최적주의자가라면 삶이 행복해질 수도 있겠다.

먹돌세상 2024. 3. 12. 06:00
반응형

도서관에서 우연히 보게 되어 픽한 책이다. 지금은 절판되어 새 책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아 구입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소장하고 싶은 책이다.
자신의 성격에 의해 불안과 고통이 연속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한 번쯤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지은 이는 완벽주의자의 세 가지 특성으로 (1)실패에 대한 거부, (2)고통스런 감정에 대한 거부, (3)성공에 대한 거부를 든다. 
완벽주의자는 실패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으로 인해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고 모험을 멈춘다.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미적거린다. 그리고 그 결과 평범한 선택에 밀려버린다.
행복한 삶에 집착하면 고통스런 감정을 거부하면서 결국 불행해진다. 
성공에 대한 거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완벽한 삶으로 설정해 버리면 결국 실망하고 만다. 그런 삶은 현실에선 없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진 다음에 해야 실패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평생 시도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나 자신도 모든 준비를 갖춰놔야 마음이 편하긴 하지만 준비하다가 지쳐서 중도 포기하기 일쑤다.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실행에 옮기는 것에 집중해야 겠다는 생각이다.)

 
건강한 완벽주의(여기서는 최적주의라고 한다)와 신경증적인 완벽주의
이 둘의 차이는 실패와 고통스러운 감정, 그리고 성공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방식에 있다고 저자는 보았다.
완벽주의자는 목표하는 길이나 인생이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탄탄대로 이길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극도로 실망하거나 당황한다. 반면 최적주의자는 실패를 삶의 일부이자 성공과 밀접하게 연결된 경험으로 받아들인다.
 
완벽주의가 병을 부른다.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성공보다 실패에 훨씬 더 마음을 쓴다. 어떤 일이든 10년 동안은 해야 전문적 수준에 이르지만 완벽주의자들은 이런 노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목적에만 집착하고 과정을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정이 힘들어지면 부담감에 오래 견딜 수 없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행복한 최적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이 실패하라고 저자는 말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실패가 거듭된다면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멘탈을 유지하기가 웬만해서 힘들다. 실패보다는 '작은 성공'을 반복하면서 자존감을 더 키워나갔으면 한다. 바로 완수할 수 있는 '작은 성공'이면 된다. 예를 들어 1km달리기 같은 마음만 먹으면 단시간에 해낼 수 있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는 완벽이 아닌 최선을 추구하라고 한다.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려다 좌절하려는 이유는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에 있어 '일부다처주의자'가 아닌 '순차적 일부일처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자녀와 관련된 내용도 있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부모는 특히 자녀문제에 대해 사사건건 간섭하려고 한다. 부모들은 자신들이 자녀들에 대한 관심을 많이 쏟지 않을 수록 지나치게 간섭하고 잔소리를 한다. 자신들의 부재와 무관심을 만회하기 위함이다. 특히 맏이의 경우 부모로부터 많은 시간과 관심을 받기에 완벽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또 한가지는 아이를 칭찬할 때도 노력과 성취에 대한 칭찬은 하되 특성과 성격에 대한 언급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꾸중할 때도 아이의 인격과 행동을 분리해야 한다. 창피를 주거나 굴욕감을 느끼게 하면 안된다. 즉 '행동'에 초점을 맞춰 지적해야 한다고 했다.
 
저자는 이에 대한 해결로
 
첫째, 변화의 첫걸음으로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경직성과 완고성은 긍정적 성향으로 바꿔말하면 일관성, 신뢰성이 된다. 따라서 일관성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경직성을 버리기 힘들다. 그 이유는 마음 한 구석에 경직성을 버리면 일관성까지 줄어들거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실제로 그러한 행동을 또 다른 이름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랭거'는 말했다.
완벽주의 때문에 불행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한편의 신중하고 철저한 성격과 연결하고 있기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일을 잘 마치고 싶어하는 것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완벽주의 사고방식이 아닌 좀 더 유연하고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가져보자
 
둘째, 왜곡된 생각을 제거하라
우리의 감정은 생각을 따라 간다. 즉 사건이 있고 생각을 한 후에 감정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고통스런 감정은 왜곡된 생각과 비합리적 사고에 의해 일어난다. 따라서 왜곡된 사고를 제거함으로써 현실감각을 회복하는 것이다. 지금의 위협은 1년 후면 모두 치유되는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사소한 일에 연연하지 말자.
 
셋째,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자
상대방에 대한 조언보다는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한 완벽주의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보자
 
넷째, 나를 사랑하는 것이 먼저다. 나를 받아들인 다음에야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다섯째, 행복한 척 하지말고 나의 감정을 적절한 표현으로 솔직하게 말하는 것
 
여섯째,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불확실한 세상을 좀 더 편하게 느끼게 위해서는 불확실성을 포용해야 한다. 무지함을 인정하면 준비가 된 것이다. 우리가 알수 있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알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헬렌켈러
마치 내일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처럼 눈을 사용하고
내일이면 귀머거리가 될 것처럼 새의 노래를 듣고
내일이면 촉감을 잃어 버릴 것처럼 모든 사물을 만져봐라
냄새도 맡지 못할 것처럼 꽃의 향기를 맡아 보고 한입 한입 음무하고 모든 감각을 최대한 활용해라
세상이 보여주는 모든 모양과 기쁨을 아름다움을 즐기며 기뻐해라

 
 
<결론은>
나는 완벽주의자가 맞다. 
역설적이지만 나의 완벽주의가 완벽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좀 더 최적주의자에 가까워진다.
완벽주의와 최적주의는 서로 다른 존재 방식이 아니다. 또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안에는 두 가지 특성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훌륭한 삶은 어떤 존재 상태가 아닌 과정이다. 목적지가 아닌 방향이다.
 
나는 완벽주의자이면서 최적주의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