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완도로 배를 타고 이동한 후 구례 화엄사를 잠시 들렸다.
화엄사를 내려와 '시골밥상'이라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적당한 차박지를 찾으려고 했지만 토요일이었기에 캠핑장 예약이 모두 차서 부득이 (노숙) 차박지를 찾아야 했다.
마눌과 나는 내일 연곡사를 따라 올라가는 피아골 계곡을 향하기로 계획을 잡고 있던 터라 할 수 있으면 연곡사 부근을 찾았다.
역시나 차박지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일단 화장실 문제도 해결되어야 했기에 섬진강 인근 주차장도 여건이 좋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연곡사 버스주차장에 화장실도 있고 한 밤중에 버스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연곡사를 올라가다 우연히 지리산 단풍마을(공원)을 찾게 되었다. 마을 한가운데 계곡에 조성되어 있는 곳인데 피아골 단풍축제 임시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듯했다.
도착 시간이 저녁 7시경이었지만 주위는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 있었고 넓디넓은 주차장에 우리 밖에 없었다. 신비스러운 느낌과 약간의 긴장감에서 오는 뭔지 모를 자극이 나쁘지 않았다. (정말 조용했고 인근에 전기시설도 없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차량 내부 세팅을 마치고 나니 7시 50분이었고 주위를 둘러볼 수 없으니 딱히 할 일도 없어졌다. 우리는 맥주 한 캔씩만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당시 행사장 주차장인 줄 알고 새벽부터 단풍관광객들이 올 줄 알고 아침 일찍 일어나기로 했다)
새벽 4시에 깨어났지만 주위에 특별한 점이 안 보여 다시 취침. 6시에 일어났지만 우리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밭에 나가는 아주머니 한 분이 단풍공원 주차장을 가로질러 간 게 전부다.
그제야 행사장 안내도가 올해 것이 아닌 지난해 것인 걸 알았다.(도착해서 안내도를 볼 당시 꼼꼼하게 볼 수 없었다.)
아무튼 마눌과 나는 그 넓은 공원을 독차지했고 조용하고 편하게 잘 수 있었다.
과거 캠핑장으로 사용했었는지 전기코드 시설과 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공원 한가운데 수영장으로 사용했던 풀장이 있었다.
아침은 전날 싸왔던 유부초밥과 쌀국수로 대충 때우고 연곡사 주차장으로 향했다.
피아골대피소까지 다녀오려면 조금은 일찍 출발해야 할 것 같았다.
연곡사 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직전마을까지 2km 아스팔트길을 따라 올라갔다.
직전마을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었지만 직전마을 음식점 이용객들에게만 주차장을 개방할 수도 있는 터라 마음 편하게 걸어가기로 했다(아직은 체력이 남아 있었기에)
아스팔트길 옆으로 나무데크가 조성되어 있어 직전마을까지 가는데 문제는 전혀 없었다. 혹시 걷는 게 부담된다면 직전마을까지 차로 올라가도 좋을 듯하다. 식당주차장 외 갓길주차도 허용되고 있었다.
직전마을 길 약 200m를 통과하면 본격적인 피아골 트레킹 장소로 들어갈 수 있다. 이곳까지는 아직 단풍이 내려오지 않은 듯했다. 길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소리에 힐링했다.
1km 정도를 가다 보면 표고막터가 나오고 이후 삼홍소까지 부담 없는 길이 펼쳐져 있으니 즐거운 트레킹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삼홍소가 가까워질수록 단풍색깔이 다양했다. 재작년 내장산 단풍구경 갔을 때의 애기단풍의 색깔은 아니지만 멀리 제주에서 단풍구경온 보람을 찾았다. (애기단풍은 나무 종자가 다른 듯했다. 붉은색이 아니라 새빨간 색이었다)
비가 내렸었을까? 계곡물은 충분한 듯 보였고 힘도 있었다. 굽이굽이마다 작은 폭포를 연상시켰고 물살의 소리가 압권이었다. 다만 물에 손을 담가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 많이 아쉬웠다.(출입금지 표시를 무시하고 들어가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 게 좋은 거라 생각하고 구경만~)
등산스틱을 가져가긴 했지만 오를 때 쓰지 않고 내려올 때 썼다.
한라산 오를 때도 안 써본 스틱인데 지리산에서 썼다. 몇 번 넘어질 뻔했던 상황에서 나를 구했다. 이번에 스틱의 유용함을 체험했다.
연곡사에서 피아골대피소까지 약 6km 거리였고 시간은 2시간 10분 정도 소요됐다. 생각보다 빠른 걸음으로 온 것 같았다. 대피소 탁자에서 직전마을에서 사간 밤과 집에서 가져온 귤을 까먹었다. 옆에서 다람쥐가 뛰어다니고 있는 기막힌 구경도 했다.
산행에서 내려가는 길은 언제나 즐겁다.
난생처음 지리산 체험도 신선했다. 포근하게 겹쳐진 산세와 산을 타고 내려오는 생명수의 조화. 그리고 어느 방향에서도 산으로 진입할 수 있는 너그러움을 가진 산이다.
이번 산행으로 산의 매력을 조그나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한라산을 바라보며 살면서도 한라산의 실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 한라산과 지리산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을 듯하다.
지리산 천왕봉, 노고단, 뱀사골 등 가보고 싶은 곳이 많다.
이번은 짧게 끝냈지만 알찬 일정으로 다시 와 보고 싶다.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지리산과 관련된 노래가 없었나 싶다.
내장산같이 근사한 노래 한 곡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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